선진국 노인복지 정책이 대한민국에 주는 시사점
복지 철학의 재정립: ‘소극적 보호’에서 ‘적극적 투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노인복지를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게 제공하는 시혜’로 보는 관점이 강하게 남아 있다. 정부는 기초연금과 노인일자리 사업 등 일부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고 있지만, 정책 전반에는 제한적이고 선별적인 성격이 짙다. 반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는 노인을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복지를 ‘국가의 의무이자 사회적 투자’로 인식한다. 이들 국가는 노인복지를 단순히 비용이 아닌 장기적 경제 순환 구조의 한 축으로 본다. 노인의 경제 활동 참여, 지역사회 활동, 건강 수명 연장을 통해 사회 전체의 활력을 높이고자 한다. 한국이 고령화로 인한 부양비 증가를 부담스러워하는 사이, 선진국들은 복지를 오히려 인프라로 전환해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로 구축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도 ‘최소한의 보호’라는 복지 철학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사회구조’라는 장기 전략 속에서 노인복지를 재정의할 시점이다.
서비스 전달체계의 혁신: ‘중앙집중형’에서 ‘지역 기반 분산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노인복지 시스템은 지나치게 중앙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책은 중앙부처에서 기획되고 일률적으로 집행되며, 지역의 특성과 수요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일본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도입했다. 일본의 이 시스템은 고령자가 자신의 거주 지역에서 최후까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의료, 요양, 생활지원, 주거가 통합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지역 주민이 유기적으로 협력한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정책의 효율성을 높였고, 고령자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시켰다. 대한민국은 지역 보건소와 복지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분절된 채 기능하고 있다. 노인의 건강, 돌봄, 주거, 여가를 한 시스템 안에서 연계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중앙은 방향성과 지원을 담당하고, 실행은 지역이 주도하는 모델로 변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정책이 삶의 현장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재정 기반의 구조 개편: 보험과 조세의 균형 잡힌 조합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노인복지는 대부분 ‘보험 기반’과 ‘선별적 현금 지급’에 의존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이 노후를 떠받치고 있지만, 제도 설계 자체가 과거 산업화 시기의 생애주기 모델에 맞춰져 있어 현 고령사회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독일은 사회보험 제도의 대표적 국가이지만, 장기요양보험에서는 가족 돌봄에 대한 현금보상까지 포함하며 유연한 구조를 보여준다. 반면 스웨덴은 조세 기반의 보편적 복지를 통해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복지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대한민국도 이 두 모델을 절충할 필요가 있다. 보험만으로는 사각지대를 해결할 수 없고, 조세만으로는 재정 부담이 과도해질 수 있다. 따라서 기본적 서비스는 조세 기반으로 제공하되, 소득과 기여에 따라 차등적인 보험급여를 설계하는 이중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저소득 노인을 위한 주거보조, 의료비 지원, 긴급 생계비 등은 조세 기반의 보편 서비스로 보완하고, 장기요양이나 간병 부담은 보험을 통해 분담하는 방식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조 개편은 복지의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높여줄 것이다.
노인의 사회적 참여를 복지의 일부로 통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복지 정책은 여전히 ‘생계 보장’과 ‘신체적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노인복지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노인의 사회적 참여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을 포함해야 한다. 미국과 스웨덴은 노인의 고용, 봉사, 여가 활동을 복지 시스템에 통합하고 있다. 미국은 시니어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에게 사회 기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스웨덴은 문화센터와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노인의 사회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한다. 반면 한국은 일자리 사업조차 단순 근로 중심이고, 그것도 저임금 단기직에 그친다. 노인은 경험과 지혜를 가진 사회 자산이며, 그들의 사회 참여는 젊은 세대와의 연결 고리가 된다. 대한민국은 이제 ‘보호받는 대상’이 아닌 ‘활동하는 주체’로서의 노인을 정책 설계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커뮤니티 내 복합문화시설, 고령자 맞춤형 평생교육, 노년기 창업 지원 등 사회적 참여를 지원하는 제도를 복지의 일부로 재정의해야 한다. 단순한 연금이나 돌봄이 아닌, ‘존엄한 삶’을 제공하는 복지가 바로 선진국이 대한민국에 보여준 메시지다.